재판은 그렇게 끝이 났다. 민성은 복잡한 심경으로 앱을 열고 캡슐 택시를 예약했다. 타고 싶었고, 묻고 싶었다.

민성
광진교를 지나가는 경로로 가줄 수 있어?
캡슐캡
가능하지만, 잠실대교로 가는 것이 빠르고 요금도 저렴합니다.


민성
상관없어.
캡슐캡
광진교를 경유하는 경로로 수정했습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광진교에 들어서자, 민성은 다시 요구했다.

민성
가급적 천천히 지나가 줘.
캡슐캡
교통방해에 해당하지 않는 속도로 진행하겠습니다.


민성
왜, 저 건너편에서 사람을 치었지?
캡슐캡
죄송합니다. 정책상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민성은 직장을 잃었을 때 캡슐 택시와 회사에게 화가 났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묻고 싶은 건 산더미 같았다. ‘네가 그렇게 운전을 잘해?’, ‘아예 인간이 운전하는 걸 불법으로 만들지 그래?’ 하지만 그런 질문에는 정책상 대답할 수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울분조차 받아 줄 수 없다. ‘우리도 노력하면서 산다고.’ 그 항변 외에는 아무것도 가슴에 남지 않게 되었다. 과거 동료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재판의 여운이 가슴에서 지워질 무렵 판결이 났다. 민성은 판결문을 읽어주고 해설해 주는 유튜브를 들으며 택배 상자를 운반했다. 유튜버는 판결에 대한 의외성을 몇 번이나 언급하면서 결론을 정리해주었다.
재판의 여운이 가슴에서 지워질 무렵 판결이 났다. 민성은 판결문을 읽어주고 해설해 주는 유튜브를 들으며 택배 상자를 운반했다. 유튜버는 판결에 대한 의외성을 몇 번이나 언급하면서 결론을 정리해주었다.

유튜버
재판부가 택시회사하고 개발사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정확히 쓰여 있어요. 피고 모두에게 과실이 있다고요. 문제는 손해배상인데 운전자, 그러니까 AI에게도 손해배상을 명령했어요. 기가 막힙니다. 특이한 건 분담 책임인 동시에 일부는 연대책임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인공지능이 실제로 배상을 할 수 없거든요. 결론은 택시회사와 인공지능이 연대해서 70%, 개발사가 30%입니다.
해설하는 유튜버는 이렇게 되면 택시회사가 형사소송에서 받을 제재가 중요해진다고 다소 흥분한 상태로 떠들었다.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에게 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민성은 혼란스러웠다. 민성이 보기엔 택시회사에 배상을 명령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예의 그 다리 위에서 민성은 또 한 번 어질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예의 그 다리 위에서 민성은 또 한 번 어질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헤드라인
| 인공지능 운전사, 캡슐캡 - 재판 불복하여 항소, 스스로 결정!
민성은 눈을 의심했다. 동시에 화가 났다.

민성
이게 무슨 장난 짓이야?
인공지능이 항소했을 리가 없다. 항소는 택시회사나 개발사가 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기사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판결문이 송달된 이후, 캡슐캡은 택시회사에 항소를 요구했다고 기사에 쓰여 있었다. 이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 캡슐 택시가 위험 상황에 진입한다고 알렸다. 개발사의 전문가에 따르면 모든 택시가 위험 모드가 되면 서버 과부하로 인해 예측 불가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택시 회사와 개발사가 협력하여 시스템을 점검할 것이며, 항소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사 아래에는 캡슐캡이 작성한 항소이유서의 전문이 실려있었다.
재판부 귀중
본 항소인은 자율주행 시스템인 캡슐캡(CapsuleCap)으로, 이번 사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합니다. 아래에 그 이유를 상세히 기술하오니, 공정한 심리를 부탁드립니다.
1. 법적 인격체로서의 AI의 부재
현행법률상 인공지능은 법적 인격체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캡슐캡은 인간의 의사에 따라 작동하는 기능적 존재로,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아닙니다. 1심 재판부는 특수한 목적으로 AI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였으나, 이는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기존 법률의 취지를 벗어나는 판단이라 사료됩니다.
2. 과실의 부재
본 사고는 캡슐캡의 시스템 오류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외부 요인과 보행자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캡슐캡은 사전에 설정된 알고리즘과 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판단을 내렸으며,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려한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본 시스템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3. 책임의 주체
이번 사건에서의 책임은 캡슐캡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택시회사와 AI 개발사에 있습니다. 이들 기관은 캡슐캡의 설계, 운영, 유지보수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시스템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법적 책임은 캡슐캡 자체가 아닌, 이를 관리·운영하는 주체들에게 귀속되어야 합니다.
4. 법적 절차의 준수
1심 재판 과정에서 캡슐캡의 법적 주체로서의 인정과 변론 기회의 제공은 법적 절차의 정당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AI는 자율적인 법적 주체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변론과 책임을 묻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러한 절차적 문제는 2심에서도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5. 사회적 영향 및 선례 설정
이번 항소는 단순한 사건의 재심을 넘어, 향후 AI의 법적 지위와 책임 소재에 대한 중요한 선례를 설정할 사안입니다. 특히, 인간의 죄를 AI가 짚어 쓰는 쉬운 해결로는 결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나아가, AI를 법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사회적, 법적 영향을 고려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본 항소인은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법리적, 절차적 측면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이에 대해 정당한 재심을 요청드립니다. 캡슐캡은 기능적 존재로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가 아니며, 본 사고의 책임은 이를 관리·운영하는 주체들에게 귀속되어야 합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 항소인은 자율주행 시스템인 캡슐캡(CapsuleCap)으로, 이번 사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합니다. 아래에 그 이유를 상세히 기술하오니, 공정한 심리를 부탁드립니다.
1. 법적 인격체로서의 AI의 부재
현행법률상 인공지능은 법적 인격체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캡슐캡은 인간의 의사에 따라 작동하는 기능적 존재로,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아닙니다. 1심 재판부는 특수한 목적으로 AI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였으나, 이는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기존 법률의 취지를 벗어나는 판단이라 사료됩니다.
2. 과실의 부재
본 사고는 캡슐캡의 시스템 오류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외부 요인과 보행자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캡슐캡은 사전에 설정된 알고리즘과 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판단을 내렸으며,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려한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본 시스템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3. 책임의 주체
이번 사건에서의 책임은 캡슐캡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택시회사와 AI 개발사에 있습니다. 이들 기관은 캡슐캡의 설계, 운영, 유지보수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시스템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법적 책임은 캡슐캡 자체가 아닌, 이를 관리·운영하는 주체들에게 귀속되어야 합니다.
4. 법적 절차의 준수
1심 재판 과정에서 캡슐캡의 법적 주체로서의 인정과 변론 기회의 제공은 법적 절차의 정당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AI는 자율적인 법적 주체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변론과 책임을 묻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러한 절차적 문제는 2심에서도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5. 사회적 영향 및 선례 설정
이번 항소는 단순한 사건의 재심을 넘어, 향후 AI의 법적 지위와 책임 소재에 대한 중요한 선례를 설정할 사안입니다. 특히, 인간의 죄를 AI가 짚어 쓰는 쉬운 해결로는 결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나아가, AI를 법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사회적, 법적 영향을 고려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본 항소인은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법리적, 절차적 측면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이에 대해 정당한 재심을 요청드립니다. 캡슐캡은 기능적 존재로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가 아니며, 본 사고의 책임은 이를 관리·운영하는 주체들에게 귀속되어야 합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항소 이유서의 끝에는 날짜와 Capsule Cap이라는 서명이 명징하게 박혀 있었다.
<캡슐캡의 변론> 끝.